📖 문학 형식에 대한 성찰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 ⟪더 리얼 씽 - 문학 형식에 대한 성찰⟫(The Real Thing: Reflections on a Literary Form, 2024)

I. 사실 직시하기

1. 사실주의, 공감과 합리성

2. 사실과 해석

3. 인지적 사실주의와 도덕적 사실주의

II. 사실주의란 무엇인가? (1)

1. 사실주의, 이상주의 그리고 중간계급

2. 사실주의, 현실, 묘사

3. 허구, 반영, 가상

4. 사실주의와 이데올로기

III. 사실주의란 무엇인가? (2)

1. 사실주의, 예술과 환상

2. 사실주의와 토머스 하디

3. 필연성과 우연성

IV. 사실주의의 정치학

1. 사실주의와 명목론

2. 죄르지 루카치의 경우

3.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V. 사실주의와 평범한 삶

1. 평범함의 가치

2. 아우어바흐의 사실주의적 비전

3. 사실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마지막 두 문장: “테러와 대량 학살, 전쟁, 질병, 빈곤, 대규모 이주, 점진적인 자연의 죽음으로 뒤덮인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세상에서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요구 중 하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의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하는 것이다. 사실주의의 과제 중의 하나는 픽션, 다큐멘터리, 르포르타쥬 등 어떤 형식을 통해서든 우리에게 ‘인지 지도’를 제공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대부분의 다른 형태의 글로벌 지식보다 더 즐겁게 이를 수행하는 것이다.”

realism(사실주의, 리얼리즘) / reality(사실성, 현실성, 실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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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사실주의의 정치학

1. 사실주의와 명목론

실재론(realism)과 유명론(nominalism)

중세 보편논쟁에서 제시된 이론들

실재론은 보편적인 것이 실재한다고 보는 반면, 유명론은 보편적인 것은 추상적인 이름에 불과하다는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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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사실주의의 정치학, 1. 사실주의와 명목론. 보충

❧ 유명론과 경험론자, 문학적 사실주의

• 실재론에서 유명론으로의 이행.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이행, 신의 지혜가 세계의 존재방식을 미리 결정하지 않으므로 인간은 자유로운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 

•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 “우리는 유명론적인 ‘특수한 것에 대한 열정’(passion for the particular)이 서구문명사에서 주요한 전환점이었음을 뒤늦게라도 인정할 수 있다.”

• 유명론은 문학적 사실주의의 원천이자 낭만주의의 중심

• 인간 본성이 허구적인 것이라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전혀 없다.

• 실재적인 것은 개인일 뿐이며 사회적 유대는 부차적인 실재, 이러한 신념은 소유적 개인주의의 등장에 핵심적인 역할 — 사회는 서로가 서로에게 도구일 뿐인 고립된 개인들의 묶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개인의 자기이익이 최상위의 것

• 경험론자. 감각적인 것(the sensible)이 이성적인 것(the rational)보다 우위에 있다. 실재적인 것(the real)은 냄새맡고 만질 수 있고 맛볼 수 있는 것들이며 이론들(theories)과 관념들(ideas)은 이러한 감각 데이터로부터 추상화한 것들, “구체적인 특수한 것들에서 당신이 멀리 떨어질수록, 당신이 얻게 되는 실재는 줄어든다.”(The further from the concrete particular you move, the less real you get) 이로써 사회 변화에 관한 주요한 이론을 배제할 수 있다. 급진주의자들(Radicals, 급진적 사회개혁을 추구하는 이들)은 생생하지 않은(bloodless) 추상 속에서 길을 잃은 환상가들인 반면, 보수주의자들(Conservatives)은 가족, 지역, 종교적 신념과 같은 뚜렷한 실재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 대부분의 현대문학의 유형은 본성상 유명론자들. 현대 미학은 18세기 중반 독일에서 이른바 ‘구체적인 것에 관한 학문’으로 발명

• 아이리스 머독Iris Murdoch의 소설, Under the Net에 등장하는 인물: “이론과 일반성(theory and generality)에서 떠나는 운동은 진리로 가는 운동이다. 모든 이론화는 비약이다. 우리는 상황 자체에 의해 규율되어야 하며, 그 상황 자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특수한 것(particular)이다.”

❧ 특수한 것의 한계, 일반 개념의 의의

• 상황을 식별하여 인식하는 것 자체에 이미 개념사용이 개입되어 있다. 상황은 특정한 것(specific)이지만 개념 없이 전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 “특수한 것들(particulars)은 뚜렷하게 감지될 수 있는 것이므로 그것에 관한 지식만 있으면 사물에 대한 참된 개념이 제공된다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최초에 우리의 주의를 잡아 끄는 것은 특수한 것들(particulars)이 아니라 [일반화된] 유형들이나 통일된 전체(patterns or unified wholes)이다. 특수한 것(particular)은 더 넓은 맥락으로부터 들어올려진다는 의미에서 추상적인 것

• 아리스토텔레스. 일반적 본성은 존재하며, 특정한 것(specific) 안에서만,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사무엘 존슨Samuel Johnson과 18세기 신고전주의 비평가들. 예술은 일반적인 유형들(general types)을 다루어야만 하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유형들을 특수화(particularise)해야만 한다.

• 특정한 것은 그 자체(specific in itself)로는 덧없고 하찮은 것이어서 우리의 주의를 끌지 않는다. ‘덧없는 것에 관한 예술은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An art of the ephemeral will not endure)

• “본질들(essences)은 우연적인 것들(accidents)보다 더 중요하다. 우리는 이 견해를, 이 고유한 특수한 것(this unique particular)만이 이 보편적 진리(this universal truth)를 전달할 수 있다고 하는 몇몇 낭만주의 시인들, 이론가들의 견해와 대비해 볼 수 있다. [몇몇 낭만주의 시인들, 이론가들이] 문제 삼고 있는 그 특수한 것은 상징으로 알려진다.(The particular in question is known as a symb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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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규정의 어려움과 사실주의의 모호성

• 문학에서의 사실주의. 대체로 믿을만하고 실물과 유사한 것으로 보이는 특정한 재현 양식(a certain style of representation, one which strikes us as credible and lifelike), 따라서 사실주의는 공감(empathy)에 의해 작동

• “사실주의는 사물을 실제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하는 것”(realism seeks to see things as they actually are), 그러나 ‘있는 그대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지각은 “편향, 습관, 관심, 욕망, 가정, 관습”(bias, habit, interest, desire, assumption, convention) 등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 공정하고 편협하지 않으며 모든 세부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정확하며 결코 논박될 수 없는 사실이나 설명은 없다. 따라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려는 노력은 가장 비사실적

• ‘사실주의’라는 용어는 1853년 프랑스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의 소설을 묘사하는 것으로 도입. 하비브Habib의 규정. “객관성과 직접적 관찰을 목표로 하고, 정확하고 기술적인 언어를 사용하며, 일반적으로 과거보다는 당대의 경험을 선호하고, 가능하고 개연성 있는 것을 고수하며, 더 단순하고 구어체적인 관용구를 선호함으로써 고도의 수사학적인 표현을 피하는 것” 

• 사실주의는 중간계급이 선호한 문학 양식, 귀족적인 사회 질서의 양식화된 예술에 적대적, 낭만주의적이고 이상주의적인 것, 정교한 것, 공상적인 것을 경계하는 경향. 서사시가 영웅시대에 속하고, 로망스가 중세 기사도 시대에 속한다면 사실주의 소설은 근대에 속한다. 

• 마르크스, ⟪공산당 선언⟫. “부르주아 계급은 경건한 광신, 기사의 열광, 속물적 감상의 신성한 전율을 이해타산이라고 하는 얼음처럼 차가운 물 속에 빠뜨려 버렸다. 부르주아 계급은 인격적 존엄성을 교환가치로 해소시켜 버렸으며, 문서로 인증되고 정당하게 얻어진 자유를 단 하나의 양심없는 상업적 자유로 바꾸어 놓았다. 부르주아 계급은 한마디로 종교적 정치적 환상 속에 숨어있던 착취를 공공연하고 파렴치하며 직접적이고 건조한 착취로 바꾸어 놓았다. 부르주아 계급은 지금까지 존경받았고 사람들이 경건하게 바라보던 모든 활동에서 신성한 후광을 벗겨 버렸다. 부르주아 계급은 의사, 법률가, 시인, 학자를 자신들을 위해 일하는 임금 노동자로 바꾸어 놓았다.”

• 버지니아 울프에서 ‘실재’는 본질적으로 심리적인 것이어서 감정과 감각의 영역은 일상적인 보고서보다 사실적이며, 마르셀 프루스트의 경우에는 주관적 인상이 진실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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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카치 죄르지Lukács György의 비판적 사실주의

• 전형적인 것(das Typische). 특수성이 구체적·예술적으로 체현된 것, 개인과 사건에 대한 개연성 높은 묘사를 통해 현실감을 부여

• “루카치의 문학적 사실주의 이론 대부분은 미학에 관한 헤겔의 글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다.”(⟪미적인 것의 고유성⟫(Die Eigenart des Ästhetischen)

• 사실주의 소설은 사회의 근본적인 흐름과 갈등을 드러내는 동시에 이러한 갈등을 예술적 전체로 통합, 진정한 사실주의 예술은 셰익스피어와 발자크의 특징인 개성과 전형성을 결합, 이로써 사회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을 통합한 총체성은 자본주의 사회의 소외에 대한 대안을 제시

• 사실주의는 역사적 순간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내면적 논리까지도 포착, 모더니즘 문학의 전성기에는 그 시대를 형성해 낸 부르주아 계급이 역동적이고 미래 지향적이었으므로 상황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발자크가 대표적인 사례

• 모더니즘은 1차대전에서 정점을 달했고, 그 문학의 담지자였던 부르주아는 비전의 힘을 상실 —> 역사적 풍경에서 눈을 돌려 예술의 자율성으로 후퇴, 구체적인 것은 추상적인 것에 희생된다.(카프카, 프루스트, 무질, 조이스, 베케트, 카뮈) 복합적 총체성 파악의 불가능, 냉소와 허무주의가 예술적 정조를 형성, 이후 분열이 문학 형식 자체에 침입(엘리어트, ⟪황무지⟫)

• 루카치의 사실주의는 보편적 범주이므로 모든 진정한 예술의 본질이지만, 역사적으로 특정한 범주이기도 하다. 이는 양립되지 않는 주장, 즉 루카치의 비역사적 관점을 보여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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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주의(naturalism)

• 모든 현상이 초자연적, 심리학적 설명에 의존할 필요 없이 자연적·과학적 관점에서 설명된다는 확신에 의존. 물질주의(materialism)의 한 형태, 사실주의가 예술양식을 가리킨다면, 자연주의는 자의식적 운동에 가깝다. 

• 플로베르Flaubert, 졸라Zola, 모파상Maupassant, 공쿠르Goncourt 형제, 입센Ibsen, 쇼Shaw, 기싱Gissing, 스트린드베리Strindberg, 씨어도어 드라이저Theodore Dreiser, 잭 런던Jack London, 업튼 싱클레어Upton Sinclair, 아널드 베넷Arnold Bennett, 존 갈스워시John Galsworthy, H. G. 웰즈Wells

• 작가는 주변 환경을 관찰하는 유사과학적 관찰자, 극도로 객관주의적 방식으로 인물과 사건을 조사,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물질적·심리적·생리학적 법칙이 인간의 행동을 결정 — 엄격한 비인격성(austere impersonality)

• 에밀 졸라. “나는 사실을 설정하는 관찰자일 뿐이다.” 그렇지만 세계에 대한 수동적 관찰자가 아니다. 유전과 환경의 영향 아래서 인물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기록하기 위해 인물을 일련의 상황에 배치하는 실험자이며, 그런 까닭에 이 실험은 현실에 대한 중립적인 기록을 의미하지 않는다. 생리학의 연속이자 완성

• 자연주의 소설은 반예술적일 수 있다. 인간은 생물학적 유기체로 전락, 개인은 유형이 아닌 표본일 뿐, 인류에 대한 장미빛 비전이 없다. 좋고 나쁨, 아름답고 추함 같은 판단은 무관심한, 멍하니 있는 자연에 강요된 주관적 편견일 뿐이다. 가치는 사실과 동떨어져 있거나 완전히 거부된다. 

• 자연주의의 사회적 함의. 진화론이 계급 질서의 기반을 허물었듯이 자연주의는 소설의 주제에 대한 평등주의를 확립, 부르주아의 수호자들로부터 도덕적으로 공포에 질린 울부짖음을 불러일으켰는데, 그들은 자연주의를 역겹고 혐오스러운 것으로 여겼다. 

• 루카치는 자연주의를 모더니즘의 반대물, 그릇된 주관주의적 예술과 대조되는 거짓된 객관주의적 예술 형태로 간주, 둘 다 사회생활의 표면을 관통하여 그 아래에서 작용하는 역사적 힘을 드러낼 수 없다. 

• 사실주의는 설명적이고 평가적일 수 있다. ‘사실에 대한 설득력 있는 묘사’가 평가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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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하고 진부한 것의 가치(The value of the commonplace)

• 사실주의 소설의 소재. 이상하고 거만한 귀족이나 모험심이 강한 영웅을 따라 다니는 평범한 남녀들, 일상의 인간 경험과 그 내부의 측면을 타당한 탐구 영역으로 확립

• 프랑코 모레티Franco Moretti, ⟪세상의 이치⟫(The Way of the World, 1987). 부르주아 계급의 사회화 과정에서 소설이 수행한 역할과 상징적 형식으로서의 교양소설(Bildungsroman)에 대한 탐구

“정상(normality)의 개념에 대한 교양소설의 태도… 20세기 사상의 대부분 — … 프로이트에서 푸코까지 — 은 정상은 그 반대에 비추어, 즉 병리학, 주변화, 억압 등에 비추어 규정해왔다. 정상이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표시되지 않은 실체로 보인다. 이러한 자기방어적인 ‘부정’ 과정의 결과, 정상의 의미는 그 외부에서 — 그것이 포함하는 것이 아닌, 그것이 배제한 것에서 찾아야 한다… 소설은 우리가 앞서 묘사한 것과는 대립되는 전략을 따라왔다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정상을 그 예외의 위치에서가 아니라, 안으로부터 파악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또한 소설은 정상이 정상으로서 흥미롭고 의미 있다는 현상학을 만들어냈다.”(p. 39)

• 사실주의와 일반 사람들 사이에는 이전에 번창했던 문학 형식에는 해당되지 않는 연결이 있다. ‘서민들’(populace)은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중하충 중간계급까지도 확장되는 개념, 문학적 사실주의는 중간계급 사회가 이들의 일상 경험을 끝없는 매력의 원천으로 발견하기 시작하면서 생겨났으며, 그 경험의 가치와 견고함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쇠퇴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 문학적 사실주의 또 다른 특징. 평범하고 진부한 것들이 구원에 도움이 된다거나 더 높은 진리의 알레고리가 아닌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믿음. 이러한 전환은 기독교에서 발견된다고 주장되어 왔다. 신약성서에서 구원이 일어나는 지점은 신성한 의례나 봉헌된 장소가 아닌 공동생활[ekklēsia]이다. 신은 말씀이 육신이 된 존재이며, 그의 인격 안에 비천함과 숭고함이 결합되어 있다. 아버지가 요구하는 것은 번제물이 아니라 자비와 공의이다.

• 혈통과 고귀함이라는 생각은 시민적 직업적 생각에 자리를 내주며, 중요한 것은 일의 영역, 가정적·물질적 부의 획득 — 근대 사실주의 소설 탄생의 배경이 된 역사적 변화. “소포클레스에게는 상상조차할 수 없는 것이었고, 포프Pope와 라신Racine에게는 수치스러운 예술 유형”

• 종교개혁은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의 구별을 해체하였고, 일상의 사회가 구원과 저주의 장이 되었다.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일상생활의 세세한 부분에 대한 강렬한 관심이 생겨났고, 가장 하찮은 측면에서도 신의 진노나 은총의 표징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 사제 계급의 중재 없이 두려운 고독(solitude) 속에서 창조주와 대면하는 개인, 이러한 개인을 중시하는 맹렬한 기세를 가진 공세적 개인주의(aggressive individualism)에는 민주정과 평등주의가 결합되며, 이 모든 것이 사실주의적 글쓰기에 반영된다.(All this is reflected in realist writing.) 

• 의례, 위계질서, 전통에 대한 혐오감을 덧붙인다면 사실주의 소설을 프로테스탄트적 형식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여기에 등장인물에게 처벌이나 보상을 부여하는 구성(plot)은 신성한 섭리를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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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리히 아우어바흐Erich Auerbach의 사실주의론

⟪미메시스⟫(Mimesis: Dargestellte Wirklichkeit in der abendländischen Literatur, 1946; Mimesis: The Representation of Reality in Western Literature, 1953) 

• 사실주의는 구체적인 문학 양식, 구체적이고 유동적이며, 정확하게 특정되고 다양하고 개방적이며 사회적으로 포용적이며 역사적 사고를 갖고 대중주의적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추상적인 생각과 경직성을 불신한다. 이는 창세기부터 에밀 졸라에 이르기까지 등장한다. 

• “루카치의 비판적 사실주의 찬미가 스탈린주의에 대한 은밀한 비판인 것과 꼭 마찬가지로 ⟪미메시스⟫는 파시즘에 대한 암호화된 대응이다.”(Mimesis is as much a coded response to fascism as Lukács’s praise of critical realism is a covert critique of Stalinism.)

• 미래에 대한 유토피아적 전망

“물론 지구 위에 인간들의 완전한 평등한 생존이 실현되기까지는 요원하기 한이 없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적어도 인간이 도달할 그 목적지가 우리의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 여러 다른 인간들의 우연적인 순간의 내면과 외부를 편견 없이 정확하게 묘사하는 작가들의 그 태도에 가장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다.”(p. 726)

• 호메로스의 서사시와 구약성서 창세기. 서사시의 인물들은 상대적으로 정적이며, 창세기의 인물들이 가진 개인적인 특징을 결여. 서사시는 숭고한 반면 구약성서는 산문적. 서사시는 전설과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에 관련된 것들을 다루지 않는다. 보통의 삶에 대한 무관심, 역사의식의 결여. 역사는 갈등과 교차 흐름의 기록, 도식화가 어려운 다양하고 모호한 사건

“처음부터 ⟪구약성서⟫ 이야기 속에는 숭고한 것, 비극적인 것, 문제가 있는 것은 바로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 속에서 형성된다. 카인과 아벨 사이, 노아와 그의 아들들 사이, 아브라함, 사라, 하갈 사이, 리브거와 야곱 사이 등등에서 벌어지는 것 같은 장면은 호메로스의 문체에서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p. 69)

“고대에 할 수 없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일상적으로 사실적인 것, 일상생활에 속하는 일체의 것은 희극의 수준 이외의 다른 문체 수준에서 다루어져서는 안 되었고 이것은 문제적인 것의 천착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했다. 따라서 리얼리즘의 경계는 매우 좁은 것이었다. 리얼리즘이라는 말을 조금 더 엄격하게 쓴다면, 일상적인 직업과 사회 계급(상인, 공인, 농민, 노예), 일상적인 장면과 장소(가정, 가게, 밭, 창고), 일상적 관습과 제도(결혼, 아이들, 일, 밥벌이), 간단히 말해 서민과 그들의 생활을 문학적으로 심각하게 다룬다는 것은 고대의 리얼리즘이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p. 81)

• 일상생활, 대중의 힘, 이른바 숭고한 문체

“역사의 움직임 아래 가로놓인 세력들이 드러나는 것은 바로 일상생활의 사상적, 경제적 조건 속에서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군사적인 것이든, 외교 관계의 것이든 또는 국가의 내부 조직에 관한 것이든, 이러한 역사의 세력들은 일상생활의 심부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산물이고 최종적 결과에 불과한 것이다.”(p. 84)

“그것은 일반 민중의 발바닥에서 정신운동이 태어나는 것, 당대적 삶의 일상사의 복판으로부터 정신운동이 탄생하는 것을 그린다. 그리하여 그것은 고대 문학에서 가질 수 없었던 중요성을 갖는다. 우리가 여기에서 보는 것은 ‘새 마음과 새 정신’의 깨어남이다. 이 모든 것은 베드로의 부인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신약성서⟫에 이야기되어 있는 모든 사건에 해당된다.”(p. 95)

“숭고와 겸손의 대조적 융합은 성서의 특징으로서 일찍이 교부 시대부터 강조되었고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강조되었다… 그러나 기독교의 전파가 성서와 기독교 문헌 일반을 고도의 교육을 받은 이교도들의 심리적 비판에 노출시켰을 때 양식의 문제가 날카롭게 대두되었다. 이들 교육받은 이교도들은 자기네 안목으로는 말할 수 없이 조야한 언어로 양식상의 범주에 전혀 무지한 채 쓰인 글 속에 가장 높은 진실이 담겨 있다는 주장에 대경실색하였다. 이러한 비판은 어느 정도 수용되어서 교부들은 대체로 초기의 기독교 문헌보다는 고전 양식의 전통적인 기준에 한결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비판은 성서의 특징이 되어 있는 참다운 위대함에 그들이 눈을 뜨게 하였다. 즉 성서가 일상적인 것과 격이 낮은 것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포용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종류의 숭고성을 창조하여 내용이나 문체에 있어 가장 격이 높은 것과 가장 격이 낮은 것을 직접 연결시켰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pp. 227-228)

“유럽 중세의… 숭고 문체는… 삶의 현실과 대결했을 때… 그 넓이와 깊이를 다룰 수도 없고 다루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시간, 장소, 사회 환경 어느 것에 있어서나 한정되어 있다. 그것은 양식화하고 이상화함으로써 과거의 사건들을 단순화한다. 그것이 청중들에게 환기시키려고 하는 감정은 멀리 동떨어져 있는 세계에 대한 탄복이요 경탄이다. 이 세계의 본능과 이상이 청중 자신의 것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현실 생활의 마찰이나 저항과 비교해 볼 때 청중의 실제 생활이 도저히 도달할 수 없으리만큼 완강하고 순수하고 자유롭게 전개된다.”(pp. 188-189)

• 단테Dante Alighieri. 지상의 사물을 영원의 형상으로 취급할 만큼 고전주의의 전통을 유지, 일상과 기괴하고 불쾌함도 숭고한 문체로 표현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장엄한 사실주의자

“독자들이 알고 있듯이 단테는 일상적이고 기괴하고 불쾌한 것을 직접적으로 자세하게 묘사함에 어떤 한계를 두지 아니한다. 고대적 의미에서 숭고한 것으로 간주될 수 없었던 것이, 단테의 손에 의하여 숭고한 것이 된다. 단테에 있어서의 스타일의 혼합은 이미 주목을 받은 바 있다.”(p. 267)

“단테의 언어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풍부성, 실감, 힘,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 그는 비교할 수 없이 확실한 힘으로 세계를 파악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사람이야말로 그의 언어를 통하여 세계를 새로 발견했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p. 264)

• 몽테뉴Michel de Montaigne

“그는 결코 거창하거나 장중하지 않다. 그는 결코 소재의 격을 위하여 힘 있는 민중적 표현 방식이나 일상생활에서 가져온 이미지를 버리지 아니한다.”(p. 420)

• 프랑수아 라블레François Rabelais. 예술적 무정부 상태에 해당하는 중세 후기 작품의 통합된 형태를 깨고 근대의 사실주의를 예고한 작가

“라블레에게 미적 기준은 없다.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어울린다. 일상적 현실이 전혀 있음직하지 않은 환상 속에 놓여 있고 가장 조야한 우스개 농담이 박식으로 가득 차 있으며 도덕적 철학적인 교화가 음란한 표현과 음담패설 속에서 흘러나온다. 이 모든 것은 고대보다는 훨씬 더 중세 후기의 특징이다. 적어도 고대에서 ‘웃으며 진실 말하기’는 이렇듯 양 극단으로 폭넓은 추의 진동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그것을 위해서는 중세 후기의 문체 혼합이 필요하였던 것이다.”(p. 378)

• 셰익스피어Shakespeare

“셰익스피어는 숭고한 것과 저속한 것, 비극적인 것과 희극적인 것을 무한히 풍부한 비율로 혼합한다. 이따금 비극적인 것의 음향이 섞여 있는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희극을 상기하면 그의 세계는 더욱 풍부해진다. 단일한 수준의 스타일이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되고 있는 비극은 하나도 없다.”(p. 431)

“그는 평범한 일상적 현실을 진지하게 다루지도 않고 비극적으로 다루지도 않는다. 그는 오직 귀족, 왕족과 왕, 정치가, 장군 그리고 고대의 영웅들만을 비극적으로 다룬다. 일반 평민이나 병정들 혹은 중류 계급이나 하층 계급이 등장하는 것은 언제나 비속한 스타일 속에서이며 그가 잘 다루는 희극적인 것의 변주 속에서이다. 이렇게 계급에 따라서 스타일을 분리하는 것은 중세의 예술 작품이나 문학 작품, 특히 기독교의 영향을 각별히 받은 작품 속에서보다 셰익스피어의 경우에 더욱 시종일관해서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이 고대의 비극관을 반영하는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p. 446)

• 스탕달Stendhal, 발자크,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일상생활, 특히 사회적 하층 계급에서 끌어온 인물들에 대한 진지한 처리, 사회적·역사적 상황에 대한 예리한 감각을 보여준다.

• 버지니아 울프, 제임스 조이스

“그런데, 이 기법을 혼돈과 무능력의 징후, 또는 망해 가는 우리 세계의 반영만으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물론 그렇게만 본다고 해도 크게 잘못된 평가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런 부류의 작품은 한결같이, 어떤 숙명적인 분위기에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율리시스⟫ 같은 작품을 보면, 유럽 전통에 대한 애증이 엇갈린 상반되는 생각과 느낌의 풍자적이고 혼란스런 묘사, 뻔뻔스러울 만큼 노골적이고 고통스러운 냉소주의, 그리고 해석 불가능의 상징주의, 이런 것들의 무질서한 혼합임이 분명하며, 아무리 공을 들여 분석해 본다 해도 모티프들의 다양하고 복잡한 전개 및 배합 외에는 별다른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다… 이런 작가들은 문화와 문명을 증오하며, 이 증오를 그런 문화와 문명이 산출한 가장 발달된 문장학적 기법의 힘을 빌려 묘사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우리는 종종 극단적이고 광신적이기조차한 파괴욕을 발견하기도 한다.”(pp. 723-724)

• 미하일 바흐친과 아우어바흐의 사실주의. 본질적으로 허세를 깨뜨리는 바토스Bathos적 형태, 일상적인 지혜로 상류계급의 과장된 수사에 구멍을 내는 것, 아우어바흐에게는 고도로 양식화된 예술보다 대중주의 예술이 더 바람직하며, 바흐친에게는 소설이 공식 담론의 형태를 띠면서도 시장의 생생한 언어로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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