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극, Ch. 3

테리 이글턴, ⟪비극⟫(Tragedy, 2020)

3. 비극적 이행(Tragic Transitions)

❧ 헬라스 비극과 시대

• “역閾의 상태(liminal states)가 주요 비극이 나오는 시기라는 귀에 익은 주장이 있다.” 한 시대가 상황의 한가운데서(medias res) 자신을 느낄 수도 있을 때, 뒤에 놓인 것에 의해 규정을 받으면서도 아직 다가오지 않은 것에 의해 추동되고, 양 시대의 조수와 같은 영향력에 의해 양쪽으로 끌려가면서 불안하게 또는 흥분하여 자신의 경험을 결말이 열린 것으로 인식하는 때, 18세기 말이나 20세기 초 같은 시기, 다양한 지진의 흔들림이 어떤 묵시록적 거친 짐승의 도래를 알리면서 발아래 땅이 움직이는 게 느껴지는 시기

• 그리스 비극이 수립되던 시기. 사회적·정치적 격변기, 지배계급에 대한 민중의 분노, 인기를 얻은 압제자들의 득세, 공동의 관례에 기초한 공동체 안에서 공적이고 비개인적이고 참여적인 특징을 보여 주는 정치

• ⟪오이디푸스 왕⟫은 신화적이고 상징적인 사고로부터 더 추상적이고 담론적 사고로 이동하던 5세기 아테네 계몽주의의 문건(찰스 시걸Charles Segal), ‘합창단’은 폴리스의 일반적 구성원으로서 신화적 영역보다는 시민적 영역을 점유, 비극은 신화를 폴리스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시작된다. 독일의 비극(Trauerspiel)은 역사의 문제이지만, 그리스의 비극 작가들은 고대의 영웅적 사건들이 당대 쟁점과 관련을 맺는 방식으로 신화적 재료를 가공(베냐민, ⟪독일 비극적 드라마의 기원⟫), 오이디푸스는 계몽된 아테네 휴머니즘이 가진 비판적 정신의 어떤 면을 보여준다. 

• “비극이라는 제도는 서사적 신화를 폴리스의 신화로 바꾸는 기계다.” “실천이성이 무대에 전시된 것”

• 헤겔의 관점에서 오이디푸스는 철학자의 원형, 절대적 시원始原에 대한 추구

•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에 나타나는 신화로부터 정치학, ‘자연’으로부터 ‘문화’, 혈연으로부터 시민적 영역으로의 이행은 헤게모니 문제, 즉 효과적인 통치에 필수적인 강제와 동의의 상대적 비율 문제를 제기, 폭력과 법, 세련됨 등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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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자베스 시대, 제임스 1세 시대의 비극

• “엘리자베스 시대의 위대함은 구체제의 고귀한 형식을 부수지 않고 새로운 것을 그렇게 많이 담아냈다는 것이다.”(틸야드E. M. W. Tilyard) 그 시대의 비극 예술은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평화조운 조화가 대체로 겉모습에 불과했을 뿐이라고 가면을 벗기고 있다. 제임스 1세 시대 비극에서 고귀한 체제는 복구 불가능하게 파괴된다.

• 셰익스피어 작품의 특징은 생명 형식의 다양성 자체이며, 셰익스피어의 개인적 천재성만이 그것들을 일관성 있는 형태로 융합할 수 있다.(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더Johann Gottfried von Herder)

•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행동과 의미가 갈라져 “행동의 축[플롯]이 한 가지 논리[즉 의지, 권력, 열정]의 지배를 받고 가치의 축은 (…) 다른 논리의 지배를 받는데,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압도하거나 지우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프랑코 모레티) — 이율배반

• ⟪햄릿⟫은 “봉건적 질서(왕국들은 단발 전투로 싸움을 벌였다)와 현실 정치(Realpolitik)라는 근대 세계 — 대사의 편지나 비밀 거래가 지배한다 — 사이에 분열된 희곡”(바르트 판 에스Bart van Es). 셰익스피어의 주인공은 “유럽의 분열 한가운데”, 낡은 신학과 새로운 민족국가 발흥의 교차로에 서 있다.(카를 슈미트)

• 셰익스피어 비극의 성취. 매혹적인 질서 감각을 그것이 무너지면서 나올 수 있는 재앙과 함께 담아냄, 안정을 향한 마음을 개인의 풍부하고 창의적이고 잠재적으로 파멸적인 힘에 대한 인본주의적 감각, 날카로운 감각과 결합 

• 질서와 혼란 사이의 충돌. 사회적 질서에 대한 믿음은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에 의해 위태로워진다. 모든 서열을 무너뜨리는 텅빈 평등, 언어와 상업 그리고 욕망의 무정부성, 개인적 자기 창조라는 새로운 윤리, 의미와 가치에 대한 자연주의적 교의 및 순진한 주관주의에 대한 의심

• 전통적 질서와 그것을 찬탈하겠다고 위협하는 세력을 똑같은 확신 속에서 제시. 방종하고 죽음에 시달리는 세계, 육신과 명예와 충성은 사고파는 상품, 인간 정체성은 골절되어 있다. 

• “이행은 교착상태가 된다… 역사적 진보라는 개념 자체가 의미의 전반적 부식 과정에서 무너져 버리면서 욕구의 영원한 반복, 음모와 반음모의 충돌, 복수의 황폐한 상호성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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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신Jean Baptiste Racine의 드라마

• 뤼시앵 골드만Lucien Goldmann, ⟪숨은 신⟫(Le Dieu Caché). 세상에 현존하는 동시에 부재하는 신, 신이 세계에서 물러나면서 절대적 가치도 사라져버렸다고 하는 것. 비극적 주인공은 신이 현존하는 곳에 살면서 세속적 맥락에서는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절대적 요구의 짐때문에 비틀거리는 사람. 신은 불가해한 존재가 되었고, 주인공은 고전적 의문을 가진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당신이 나에게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 소박한 프로테스탄트의 비전. 가치는 인간 주체 안에 존재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 실현될 수는 없다. “주체성의 진실은 세계와 별도로 살아 내야 한다.”(사이먼 크리칠리Simon Critchley) 주인공은 사라진, 내재적 의미의 세계와 권력이나 욕망의 탐욕스러운 체제 사이에서 갈등하며 파괴된다. 라신 드라마 형식 자체에서, 특히 세련된 운문과 그 운문이 다루는 요동치는 재료 사이의 특별한 긴장에서 이런 갈등을 추적해 볼 수도 있다. 

• 급진적 프로테스탄트주의의 정신병적인 신의 판독불가능한 요구, 신의 법은 공허한 동시에 고압적 — 안티고네가 보여준 것

• “골드만은 라신의 비극적 비전의 역사적 맥락을 정치적 이행 과정, 즉 17세기 프랑스에서 중앙집권적 관료국가에서 밀려나 이른바 법복귀족(noblesse de robe)이 눈앞의 타락한 세계로부터 경멸을 품고 퇴각하는 과정에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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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 전환기 무렵, 독일 드라마에 나타난 이행

• 작품들. 괴테, ⟪괴츠 폰 베를리힝겐⟫(Götz von Berlichingen), ⟪에그몬트⟫(Egmont),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Iphigenie auf Tauris); 실러, ⟪도적 떼⟫(Die Räuber); 횔덜린, ⟪엠페도클레스의 죽음⟫(Der Tod des Empedokles) — 격동의 역사에 속해있다. 

• 이 드라마들에 수반되는 새로운 담론의 특징은 비극으로부터 ‘비극적인 것’으로 — 예술 형식 자체로부터 더 폭넓은 정치적·종교적·철학적 비전으로 — 이동한다는 점. 비극 이론이 매우 풍부하게 번창한 것으 프랑스혁명 뒤 1792년부터 1807년까지의 시기로, 이때는 유럽 역사 자체가 격변을 일으키며 전환한 것으로 보이게 된다. 

• 헤겔에게 비극은 고대 그리스 문명 내의 어떤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비극은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 사이의 관계를 재구성한다. “비극은 헤겔이 이 문제의 유일하고 진정한 해법, 즉 기독교, 그가 믿었던 것으로 보이는 어떤 수정주의적 기독교로 가는 길의 중간역”

• 횔덜린도 비극을 기본적으로 이행적 형식으로 보았다. 낡은 것의 붕괴로부터 새로운 질서의 창조를 보여준다. 영웅의 희생적 죽음은 패배를 의미한다해도 동시에 사회적 변화의 촉매이기도 하다. 

• 발터 베냐민. 비극적 영웅은 신화와 신들의 구체제와 새로운 공동체의 탄생 사이에 끼게 되는데, 새로운 공동체가 도입되는 데는 그의 희생적 죽음이 도움이 된다. 

• 하이데거. ⟪형이상학 입문⟫(Einführung in die Metaphysik), “비극적 시인은 지금까지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았던 것에 관해 말하는 전위적 위반자인데, 그 과정에서 ‘존재’의 힘의 인도를 받아 세계사적 정치가(하이데거는 아마 히틀러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처럼 신세계를 고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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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더니즘

• 점점 “마법에서 풀려나고 있지만” 여전히 신화, 우화, 민담, 초자연적인 것이 풍부하게 갖추어져 있는 문명의 산물로서의 모더니즘, 세속적인 것은 아직 신성한 것의 모든 자취를 지워 버릴 만큼 견고하게 자리를 잡지 못했는데, 그 신성한 것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이 바로 예술 — 탈마법화(Entzauberung), 세속화(Säkularisierung)

• 입센과 체호프의 드라마에 나타나는 파괴적인 사회적·상업적 힘들, 과거에 대한 무기력한 노스탤지어와 미래에 대한 보람 없는 갈망 사이에서 덫에 걸려 하찮은 것들과 반쯤 기억나는 꼬리표로 머리가 꽉 찬 채 감정적 교착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인물들, 진보적 가치와 보수적인 시골 노르웨이의 경건성의 충돌

• T. S. 엘리엇의 희곡 ⟪가족 재회⟫(The Family Reunion), 부르주아 개인주의는 사람이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라고 가정하지만 인간적인 인과의 뒤엉킨 실타래 속에서 누가 어떤 행동을 한 장본인인지, 어떤 사람이 행동을 했는지 안 했는지, 자기 주도의 결과로 보이는 것이 실은 은밀하게 협동한 결과인지 아는 것이 늘 쉽지는 않다.

• 뱅자맹 콩스탕Bejamin Constant, “비극에 대한 사유”(Réflexion sur la Tragédie). 출생부터 우리를 감싸고 죽음까지 끊어지지 않는 제도의 네트워크는 고대인의 운명에 대한 근대의 대응물

•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 “모든 완전한 부르주아의 가슴에는 두 영혼이 살고 있다. 기업가의 영혼과 품위있는 중간계급 남자의 영혼이다… 기업의 원동력은 황금에 대한 탐욕, 모험을 향한 욕망, 탐험에 대한 사랑이 종합된 것이다… 부의 영은 계산, 조심스러운 정책, 합리성, 절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본가의 격정(capitalist endeavour)은 부르주아 도덕(bourgeois morality)과 투쟁하고 있다 — 고대의 신화적 세계와 합리적이고 해방된 세계 사이에 낀 비극적 드라마들

• 제니퍼 월리스Jennifer Wallace. 오랜 신조와 관습이 있는 유럽 문화 출신의 이민자들이 미합중국이라는 영원한 현재 안에서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새겨 나가려고 애쓰는 일부 근대 미국 비극을 이런 맥락에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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